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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재일)동포가
보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과
10.4공동선언 강종헌(한국문제연구소 대표)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던
10월 3일, 바로
1년전이 어떤 날이었습니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예고한
날입니다. 그 6일후에
실제로 핵실험이 있었고
그후 한반도는 6.25전쟁 이후
군사적 긴장이 가장
고조된 격동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엔
안보이사회가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결의를 통과시켰고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국제사회가 제재를 하고
있습니까? 딱 한
나라만 하고 있지요.
지금 6자회담에서는 경제제재가 아니라
경제지원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북에 비료를
보낸다, 쌀을 보낸다,
전기를 보낸다고. 제재가 아니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국제정치도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을
결집만 시킨다면 우리가
능히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유엔은
우리 민족에게 결코
좋은 일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남북이 분단되는
단서를 만든 것도
유엔 감시하에 강행된
선거로 수립된 남쪽
단독정부였습니다.
6.25 전쟁에도 유엔군이 개입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민족의 분단에 있어서
미국의 결정적 작용
과 유엔의 부정적
역할을 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엔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재 결의까지
채택했던 유엔이 총회에서
수일전인 10월 31일,
하나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어떤 결의안입니까. 남과 북이
공동발기한 결의안입니다. e한(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
통일에 대한 결의f를
만창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이것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지지하고
공동선언 합의 실천을
위해서 각 회원국들이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는 결의입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 국제 정치적
환경은 결코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습니다. 1.
선이 아니라 면을
펼쳐준 정상회담 이번 정상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에 마츠모도 세이쵸(¼{ūC£)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작품에 w점(_)과 선(ü)x일라는 소설이 있는데,
저는 오늘 e점과
선f이 아니라 e점과
면(Ź)f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서
넘기 한 60년
전에 한 분이
역시 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갔습니다.
김구 선생이 1948년에 분단
위기를 막기 위하여
남북연석회의 참석차 38선을 넘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오늘 조간신문을
보니까 내년에 남쪽에서
발행되는 10만원짜리 지폐에
김구 선생 초상을
모신다고 합니다. 이는 민족의
숙원인 통일문제와 무관하지
않는 상징적 조치로서
환영합니다. 선과 면이 어떻게
다른가, 우리 나라에는
분단을 상징하는 선이
두개 있습니다. 하나는 38선이라고 불리우는
군사분계선이고 또 하나는
바다위에 있는 북방한계선입니다.
그 선이 바로
정전체제와 민족분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e선f들은
적(G)과
아(ä)를
갈라놓는 적대적인 선입니다.
그러나 e면f은 그
안에 선을 받아들입니다.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e면f이요 지역이요 해역입니다. 이번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보면 특히 군사적
충돌이 두차례나 있었던
서해지역과 관련해서 g북방한계선h이라는
말이 선언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아예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대신에
g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h라는
지역, 면을 내놓았습니다.
대결하기 위한 e선f이
아니라 함께 뜻을
모아 가면서 모든
가치를 함께 나누어
갖는, 공유할 수
있는 e면f을 남북
정상회담에서 펼쳐 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화해,
협력의 단계를 넘어서
평화와 번영을 위해
나가야 하는데, 군사적 접근(approach)보다 경제적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군사·안보적인 접근은 항상
선을 염두에 둡니다.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고 날카롭게 대치합니다.
그러나 경제적 접근은
공리공영이라는 말로 표현되듯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면서
성과물을 공유하는 길을
열어줍니다. 북방한계선과 관련해서 한가지 애피소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남북의 해군 함정끼리 그 해역에서 국지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수십명의 남북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가슴 아픈 일을 우리가 직접 보았지요. 2004년 5월, 어떤 사람이 남쪽의 최북단 섬인 백령도로 갔답니다. 백령도에서 북쪽 용연반도 장산곶이 바로 눈앞에 보입니다. 그 해역은 우리 나라에서 꽃게가 제일 많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