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성 비망록 아베일당의 《랍치》소동은 자멸만을 초래할것이다
   6자회담에까지 또 하나의 위기
   과거청산을 회피,이웃나라 구실로 재무장 기도
(평양 7월 19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19일 비망록 《아베일당의 <랍치>소동은 자멸만을 초래할것이다》를 발표하였다.

비망록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이미 해결된 《랍치문제》를 계속 붙들고 반공화국적대시책동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다.

아베정권은 《랍치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우리 공화국에 국제적압박을 가해보려고 구걸외교를 분주히 벌리고있다.

그들은 《랍치문제》를 걸고 조선에 경제제재를 가하다 못해 이제는 총련까지 말살하려고 획책하고있다.

이로 하여 조일관계는 물론 조선반도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까지 또 하나의 위기가 다가오고있다.

아베정권이 《랍치문제》를 가지고 우리 공화국에 대한 도발을 끊임없이 계단식으로 확대하고있는 리면에는 불순한 타산과 목적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랍치문제》를 악용하려는 일본당국의 책동이 초래할수 있는 위험한 후과에 대해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비망록을 발표한다.

1

《랍치문제》는 우리 공화국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이미 해결된 문제이다.

1999년 12월 전 일본수상 무라야마 도미이찌를 단장으로 하는 일본정당대표단의 조선방문시 일본측은 일본인행방불명자 13명에 대한 안부조사를 진행하여 줄것을 우리측에 제기하였다.

2000년 3월 베이징에서 진행된 조일적십자회담에서 우리측은 해당기관이 일본측이 요청한 행불자들에 대한 안부조사를 시작하였다는데 대하여 통보하였다.

2001년 12월 조선적십자회는 일본의 반공화국적대시책동이 강화된것과 관련하여 부득불 안부조사사업이 중단되게 된다는데 대하여 일본측에 통지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행불자문제의 인도주의적성격을 고려하여 2002년 4월 특별조사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국적범위에서 조사사업을 진행하였다.

조사결과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초까지의 기간에 일부 개별적인 사람들이 일본인들을 랍치한 사건들이 있었다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 일본이 지난날 조선인민에게 끼친 전대미문의 과거범죄에 대하여 사죄보상할 대신 오히려 공화국을 계속 적대시함으로써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이 고도로 높아지고있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였다.

일본이 제때에 과거를 청산하고 법적, 도의적책임을 다하였더라면 《랍치문제》는 애당초 생겨나지도 않았을것이다.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전 일본수상의 평양방문기간 일본인행방불명자 13명이 랍치피해자로 확인되였으며 그중 5명이 살아있고 8명은 이미 사망하였다는 조사결과가 일본측에 통보되였다.

《랍치문제》가 발생한데 대하여 조일최고위급회담에서 공식 유감이 표명되였다.

같은 세기에 이보다 앞서 일제에 의하여 감행된 840만여명의 조선인강제련행, 100여만명의 학살, 20만명에 대한 일본군《위안부》강요 등 대규모의 반인륜범죄로 인한 막대한 피해가 전혀 결산되지 않은 환경에서 공화국정부가 10여명의 일본인랍치문제를 먼저 해결하는데 성의를 보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용단이였다.

고이즈미 전 수상의 방문기간 동행한 일본 외무성관계자들이 랍치피해생존자들과 사망한 피해자 요꼬다 메구미의 딸을 만나 신원을 확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2002년 9월 19일 대변인담화를 통하여 랍치피해생존자들이 희망하는 경우 일본에로의 귀국이나 고향방문이 실현될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것을 밝혔다.

2002년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의 기간 내각부와 외무성관계자들로 구성된 일본정부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랍치피해자들의 생활경위와 사망자들의 사망경위, 사건관계자들의 처벌정형을 포함하여 조사결과의 세부자료들을 보충적으로 통보받고 구체적으로 료해하였다.

일본정부대표단은 랍치피해사망자들의 묘지자리와 화장터, 요꼬다 메구미가 입원하였다가 자살한 49예방원 등을 직접 돌아보고 관계자들을 만나 요꼬다 메구미의 병상태, 입원생활과 치료정형, 자살당시의 상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청취, 확인하였으며 방문결과에 만족을 표시하였다.

2002년 10월 15일 공화국정부는 일본측의 요청에 따라 랍치피해생존자 5명이 고향을 방문할수 있도록 일본려행을 실현시켰다.

그들이 먼저 1~2주일간 일본을 다녀온후 자식들과 협의하여 앞으로의 거처문제를 정할수 있도록 편의를 보장해주자는것이 조일정부들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사항이였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생존자들이 일본에 도착한후인 10월 30일 돌연 그들을 되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

이것이 《랍치문제》의 해결과정에 일본측이 약속을 뒤집어엎고 신의를 저버린 첫 실례이다.

후에 판명된데 의하면 이 결정의 배후에는 당시 내각관방 부장관이였던 아베신조가 있었다.

이로써 《랍치문제》를 해결하여 조일관계개선의 분위기를 마련하려던 공화국정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조일관계는 대결상태로 되돌아갔다.

2004 년 5월 22일 고이즈미 전 수상이 《조일평양선언》을 재확인하기 위하여 또다시 조선을 방문하였다.

그는 그동안 조일사이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은데 대하여 유감을 표시하면서 우리측에 《랍치문제》에 대해 재조사하고 랍치피해자 자녀들을 일본에 보내줄것을 간절히 요청하였다.

공화국정부는 고이즈미 전 수상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랍치피해생존자 자녀 5명 전원을 함께 데리고 가도록 해주었으며 6월초부터 조사사업을 재개하도록 하였다.

그후 2004년 8월과 9월 2차례에 걸쳐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조일정부간 실무접촉을 통하여 일본측에 추가적으로 밝혀진 조사결과들을 통보해주었다.

2004년 11월에는 내각부와 외무성, 경찰청관계자들, 법의학전문가들로 구성된 일본정부합동대표단이 조선에 와서 1주일동안 사망자들에 대한 현지확인사업을 진행하도록 필요한 모든 편의를 도모해주었다.

일본정부합동대표단은 우리 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50여시간에 걸쳐 일본측의 의문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을 듣고 사망자들의 사망여부를 확인할수 있는 16명의 증인, 목격자들과 면담하였으며 사망자들이 생활하던 장소들도 돌아보았다.

대표단측의 요청에 따라 보충확인을 위하여 단장이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 김영남을 만났으며 그를 설복하여 메구미의 유골을 넘겨받았다.

메구미의 유골까지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간 대표단단장은 11월 17일 일본국회 참의원 랍치문제특별위원회에서 《요꼬다 메구미의 병력서가 전체적으로 신빙성있다는 느낌을 가지고있다.》고 증언하였다.

이처럼 공화국정부의 진지하고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13명의 랍치피해자중 생존자 5명과 그의 자녀 7명 모두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부모의 희망대로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까지 일본에 돌아감으로써 《랍치문제》는 종결되였다.

2

아베일당은 《랍치문제》가 해결되였음을 한사코 부인하면서 《랍치》소동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다.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라는 설을 들고나온것이 《랍치문제》가 해결된후 일본의 첫 반응이였다.

2004년 11월 17일 당시 자민당 간사장대리였던 아베는 도꾜도에서 한 강연에서 우리가 일본정부합동대표단에 통보한 자료들에 대해 《들을만한것이 없으며 계속 거짓말만 하고있다. 성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더 이상 협의를 계속하는것은 무의미하다. 북조선에는 압력밖에 통하지 않으며 응당 경제제재를 발동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폭언하였다.

아베일당은 메구미의 유골을 과학경찰연구소와 도꾜치과대학, 데이꾜대학에 나누어주어 감정하게 하였다.

과학경찰연구소는 화장시 유골이 고온에서 태워졌기때문에 DNA를 검출할수 없다고 발표하였으며 도꾜치과대학에서도 골상학적인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 8일 당시 내각관방장관이였던 호소다 히로유끼는 요꼬다 메구미의 남편이 넘겨준 유골이 《본인과 다른 두사람의 뼈》라는 감정결과를 공표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아베는 공화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즉시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결국 일본정부는 고이즈미 전 수상이 평양방문시에 확약한 인도주의지원을 동결한다고 발표하였다.

2004년 12월 25일 일본측은 우리에게 《유골감정결과보고서》라는것을 보내여왔다.

감정방법과 감정내용에 대한 설명에 모순점들이 있고 지어 감정인과 립회인의 수표나 감정기관의 공인도 없는 엉터리문건이였다.

영국과학잡지 《네이쳐》 2005년 3월 17일부는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을 감정한 데이꾜대학 조교수 요시이 도미오가 자기의 결론이 확정적이지 않을수 있으며 유골이 다른 사람의 DNA에 오염되였을수 있다고 인정한 발언내용을 게재하면서 《일본정치인들의 립장이 아무리 난처하더라도 과학적해석의 의미를 정확히 받아들여야 한다. 북조선과의 싸움에서 그들은 외교적수단들을 동원하여야지 과학의 존엄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잡지 《타임》 2005년 4월 4일부는 《요시이가 사용한 분석기법은 신뢰성에 문제가 많아 미국의 전문 법의학연구소에서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일본잡지 《세까이》, 《아에라》와 남조선언론들도 같은 의문을 표시하였다.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감정결과에 대한 의문이 국내외에로 널리 퍼지게 되자 일본당국은 유골감정을 맡아하였던 요시이 도미오를 급히 과학경찰연구소 과장으로 조동시켜놓고 외부와의 련계를 일체 차단해버렸다.

이와 관련하여 2005년 3월 30일 민주당소속 국회의원 스도 노부히꼬가 국회에서 당시 외상이였던 마찌무라 노부다까에게 《실제로 경찰훈련을 받지 않은 민간인을 부서책임자로 앉히는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비판하고 《이것이 증인을 숨기려는 의도는 아니냐》고 따지였으나 외상은 종시 명백한 대답을 회피하였다.

아베일당이 들고나온 《가짜유골설》에 격분한 메구미의 남편이 유골을 당장 되돌려줄것을 일본측에 요구하였으나 일본측은 오늘까지도 이 요구를 외면하고있다.

아베일당은 처음에 제기하였던 13명에 대한 조사와 처리가 끝나게 되자 새로운 《랍치피해대상》들을 조작해내고있다.

2005년 1월 17일 남조선주재 일본 TBS방송회사 지부가 《탈북자》들로부터 《랍치피해자》 2명이 들어있는 사진 4장을 새로 입수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내각관방장관은 같은 날 즉시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한 새로운 증거가 생겼다. 북조선측에 새 사람들에 대한 자료제공을 요구하겠다.》고 호언하였다.

그러나 이틀만에 사진의 주인공남녀가 나타남으로써 이 사건은 TBS방송회사와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대표가 공개사죄하는것으로써 막을 내렸다.

2007년 3월초 하노이에서 6자회담 조일국교정상화 실무그루빠회의에서 일본측은 《랍치피해자》들의 사망여부가 설사 모두 확증된다 해도 《랍치문제》가 해결되였다고 할수 없으며 《랍치피해자》 전원을 모두 귀국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나왔다.

다시말하여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여 돌려보내기전에는 《랍치문제》가 해결되였다고 말할수 없다는것이다.

3

아베정권은 《랍치문제》를 계속 살려 일본의 재무장을 다그치는데 써먹으려 하고있다.

《랍치문제》를 걸고 조일관계가 정상화되는것을 막으며 6자회담을 파탄시켜 조선반도핵문제가 풀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는 공화국의 핵보유》를 구실로 삼으면 일본의 군국화와 핵무장의 명분을 세울수 있다는것이 아베가 대표하고있는 일본국수주의세력의 타산이다.

아베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제창한 일본의 《전후체제탈피론》은 곧 군사적으로 속박받는 패전국의 처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속심이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범죄를 잊지 않고있는 주변나라들과 국제사회의 눈길이 있기때문에 일본으로서는 저들의 기도를 정당화할수 있는 구실이 필요한것이다.

일본은 한때 우리의 미싸일발사문제를 구실로 리용하였으나 저들자신이 미싸일과 같은 운반수단으로 정탐위성까지 쏘아올리게 되자 다른 보다 《타당한》 구실을 필요로 하게 되였다.

그래서 일본의 우익세력이 매여달리게 된것이 바로 《랍치문제》이다.

국수주의자들의 각본에 따라 《랍치문제》의 《심각성》과 《비중》을 높이기 위한 광신적인 선전깜빠니야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2006년 10월 일본에서 《구원하는 회》 회장 사또 가쯔미와 부회장 니시오까 쯔도무가 돈으로 랍치관련 《정보》들을 조작해내고있다는것이 폭로되여 크게 파문을 일으킨바 있다.

지금 일본에서 《랍치문제》는 수많은 정치간상배들과 모략단체들, 어용보도물들이 명줄을 이어가는 《랍치산업》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러한 《랍치식객》들이 《랍치수상》과 《랍치내각》까지 만들어내는데 이르렀다.

아베가 바로 《랍치문제》를 가지고 열성을 보여 당선된 첫 《랍치수상》이다.

2006년 9월 수상자리에 오른 아베는 자기를 책임자로 하는 《랍치문제대책본부》라는것을 설치하고 《랍치문제담당상》과 《랍치문제담당보좌관》이라는 직제까지 내옴으로써 첫 《랍치내각》을 발족시켰다.

일본의 주장대로라면 《랍치문제》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야 해결될수 있는 문제이며 일본의 행불자들이 다 나타나야 해결될수 있는 문제이다.

2004년 8월 도꾜도 아다찌구에서 유해가 발견된 이시가와 지까꼬라는 녀성도 일본측이 공화국에 의해 《랍치》당했다고 주장했던 녀성이다.

밝혀진데 의하면 이 녀성과 같은 소학교에서 경비원을 하던 남성이 1978년 8월 14일 교사안에서 그를 살해하고 시체를 자기 집에 26년간 묻어놓은 범행이였다.

2004년까지 보도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일본측이 공화국에 랍치되여갔다고 주장하다가 일본땅에서 발견된 사람들은 8명이나 된다.

일본에서 행불자가 한해에도 수백명이나 나타난다고 하는 실정에서 국수주의세력이 정권을 쥐고앉아 《랍치》소동에 열을 올리고있는 한 새로운 《랍치자료》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낼수 있게 되여있다.

지금 일본은 6자회담까지 《랍치문제》의 《인질》로 만들려고 모지름을 쓰고있다.

2007년 2월 5일 아베는 조선반도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 조치로서 6자회담참가국들이 공화국에 에네르기를 제공하기로 한데 대하여 《랍치문제에서 북조선이 성의있는 대응을 취하지 않으면 일본은 그 무엇인가를 주는 일이 기본적으로 없다는것을 명백히 말해두고저 한다.》고 언명하였다.

일본의 기도가 허용된다면 조선반도핵문제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야 하는 랍치문제》처럼 영원히 해결불가능하게 될것이다.

바로 이것이 핵무장을 꿈꾸고있는 일본국수주의세력이 노리는 결말이다.

여기에 아베일당의 책동의 정치적위험성이 있으며 지난날 수백만명의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 랍치하여 그들의 피를 짜내고 뼈를 깎아 저들의 발전소들과 탄광, 광산, 철도, 비행장들을 건설하고도 불과 10여명의 《랍치문제》를 더 크게 떠드는데 일본의 도덕적저렬성이 있다.

일본에 의한 조선사람 유괴와 랍치는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비정부기구》의 탈을 쓴 일본의 반공화국단체들이 조중국경지역에서 우리 공민들을 유괴, 랍치하고있다.

2007년 6월 3일 《요미우리신붕》이 전한데 의하면 이 단체들이 지금까지 《탈북자》로 둔갑시켜 일본에 유괴, 랍치하여간 우리 공민은 15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2006년 3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보안성은 대변인대답을 통하여 우리 공민들에 대한 유괴, 랍치사건을 배후조종하였거나 직접 관여한 일본의 《비정부기구》성원들인 야마다 후미아끼, 가또 히로시, 노구찌 다까유끼, 리영화의 죄행을 폭로하고 그들에 대한 체포령장이 발급되였으므로 우리에게 인도할것을 일본정부에 요구하였다.

공화국정부는 조일정부간회담과 접촉들에서 일본측에 조중국경지역에서 우리 공민들을 유괴, 랍치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그 실태를 통보해줄것과 피해자들을 돌려보내줄것을 여러차례 제기하였으나 일본측은 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있다.

※ ※ ※

아베정권은 《전후체제탈피》가 주관이 아니라 객관에 의하여 인정될 때 현실가능한 일이라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이 과거청산을 회피하고 이웃나라들을 구실삼아 재무장을 꾀하면 할수록 그것은 일본의 부흥이 아니라 자멸을 초래할뿐이다.

주체96(2007)년 7월 19일
평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