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공조와 통일〉합동강연회(05.7.20 도쿄) 강연

 

우리 민족끼리 만들어 가는 통일  

한명숙(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들어가는 말

제가 6.15공동선언 5돌을 기념하는 합동강연회에서 재일동포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개무량하고 또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저는우리 민족끼리 만들어 가는 통일’이라는 강연 제목을 달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주제는, 통일문제라는 것은 민족공조의 문제도 있고 국제공조의 문제도 있습니다.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은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나가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씀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가 민족공조와 통일 문제를 논리적으로 펴 나가는데 대해서는 이미 윤경로 선생님께서 많이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정치권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현재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또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좀더 감성적이고 생활적인 측면에서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원래 통일문제에 굉장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애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 치고 통일에 관심과 애정을 안 가진 사람이 없겠지만, 저는 좀 특별합니다. 왜냐 하면 제가 평양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6.15 5돌을 맞아서 민족통일대축전이 있었을 때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제가 평양시 신양리가 어딘가 물어봤더니, 보통강 주변이더라구요. 완전히 변했는데 거기가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가 이북분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북의 고향을 그리면서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저를 키우셨기 때문에 제가 유난히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가 해방 60주년입니다. 분단 60주년, 한일합방 100주년, 한일수교 40주년, 6.15공동선언 5돌입니다. 어떻게 공교롭게도 올해가 이렇게 역사적인 많은 의미를 담은 해가 겹쳐 있는 그런 2005년입니다.

사람이 60살이 되면 환갑이 되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환갑입니다. 이 환갑이 되면 다시 도약을 해서 60살 동안 살아 왔던 그 세월하고는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60부터다, 이런 말씀을 어른들께서 많이 하십니다. 그 의미를 우리 민족에게다 한번 비유해 본다면, 지금 우리가 해방 60주년을 맞아서 우리 민족의 인생은 이제부터다,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60 평생과 질적으로 다른, 그런 출발의 원년이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면 우리 민족에게도 이제 해방 60주년을 맞은 2005년에, 우리가 통일원년이라고 생각을 해서 지금까지와 다른 질적으로 비약된 통일을 맞는 해가 되리라는 것을 저는 의심치 않습니다.

그동안 남북문제가 꽉 꽉 막혀 있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된 이후에 김일성 주석의 조문문제와 탈북자문제 두 가지가 걸려서 남북회담이 중단되고 남북교류가 멎어섰습니다. 가던 기차가 그 자리에 멎어서 열 달 동안 캄캄 무소식이었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답답했는지 그냥 소화제를 아무리 먹어도 소화가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가슴이 6.15 5돌을 맞아서 정말 막힌 굴뚝이 확 뚫리듯이 남북문제가 확 뚫렸습니다. 남북문제가 이제는 막히지 않고 더 크게 뚫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저희들이고 여러분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겠지요?

제가 북을 두번 방문했습니다. 한번은 1992년도인데, 남측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정부의 허락을 받아서 판문점을 통해서 남북 민간여성교류를 위해 방문했었습니다.

그때 참 감회가 깊었습니다. 그때는 북을 거의 아무도 가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상당히 특혜를 받았지요. 그래서 거기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하자고 약속하고 돌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13년만에 6.15 5돌을 맞아서 다시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평양을 방문하고 여러가지를 느꼈습니다. 거기 가니까 개회식을 하는데, 앞의 큰 프랑카드에 붙어 있는 것이우리 민족끼리”였습니다. 그것이 슬로건이고 표어였습니다. 상당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우리 민족끼리 만들어 가는 통일’이라는 주제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남쪽에서 북에 간 방문단중에서 상당히 의미 있었던 것은 그동안에는 정부당국자끼리만 회담을 하든지 아니면 민간단체끼리 회담을 하든지 또 국회의원들이 산발적으로 한두명씩 북을 방문하든지 이렇게 분산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부당국자도 가고 민간도 가고 제가 단장이 되어서 국회의원단도 갔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4당이 모두 갔습니다. 민주당도 가고 민주노동당도 가고 한나라당도 가고 열린우리당도 갔습니다.

그래서 이번 평양방문단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 구성 요건으로 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괭장히 의미가 깊었지요.

거기 가서 제가 느낀 점은 이렇습니다. 역시 우리 민족이 머리도 좋고 인심도 좋고 그렇게 열정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쪽에서 간 사람들을 그렇게 열렬하게 환영해주었습니다. 그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어떤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고 열렬히 환영을 해주었고, 그렇게 우리 민족이 열정이 담긴 민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남이나 북이나 동쪽에 사는 사람이나 서쪽에 사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노래와 춤을 잘 합니다. 참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큰끼’가 있는 민족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참 음식이 맛있더라구요. 특히 김치 국물이 맛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만나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북에 가서 느낀 것은 희망을 봤다는 것입니다. 무슨 희망인가? 우리가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우리가 좀더 통할 수 있고 우리가 점점 하나가 되어가는 경험, 이런 것들을 감동적으로 느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번에 18명의 우리 국회의원단이 평양을 방문했는데, 18명이 어느 당도 예외없이 마음이 하나가 돼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다음 기자회견을 해서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제목이우리는 희망을 봤다”입니다.

첫째는 한반도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해놓은 이 건설을 전쟁으로 허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로 이어지는 민족의 하나됨을 전쟁으로 다시 갈라놓을 수 없다,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을 불러올 수 있는 어떠한 정책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둘째는 지금까지 되었던 교류협력, 앞으로도 있을 이 교류협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속되어야 한다. 셋째는 국회차원의 교류를 활발히 해서 그동안의 적대적인 관계에서 상호공존의 관계로 전환하고 교류협력을 원만히 하는데 국회가 온 힘을 다 해서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10개월만의 진통 끝에 정말 건강하고 멋 있는 아기가 탄생했습니다.

이 많은 성과를 가지고,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장관의 만남은 제2의 정상회담에 준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뜻깊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맞아서 우리는 이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가야 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1. 6.15 공동선언이 있기까지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가 6.15공동선언 5돌을 맞았는데, 6.15공동선언은 역사의 단절속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인가, 그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동안 민간차원과 정부차원에서 부단한 통일운동의 노력끝에 6.15공동선언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1972년도에 7.4남북공동성명이 있었습니다. 7.4남북공동성명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있었던 것입니다만, 7.4공동성명의 3원칙은 그 이후에 남북합의서에도 반영되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6.15공동선언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유신체제 강화의 수단으로 이것이 이용되고 실천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아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7.4공동성명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이 천명했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원칙은 남북합의서로 이어졌고, 지금도 그것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주의 원칙,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된다, 이 정신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나라 말로 말하면우리 민족끼리’입니다. 그것이 7.4공동성명에도 있고 91년에 채택했던 남북 기본합의서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평화의 원칙입니다.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한다는 평화의 원칙을 남북 기본합의서에서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입니다. 사상과 이념, 제도, 남북이 다 다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어떻습니까. 조총련, 민단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것에 머물러 있는 한 통일은 오지 않습니다. 한발자국씩 버리고 양보하고 가까이 가고 부둥켜 안을 때 통일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내부통일이 중요합니다. 사상과 이념, 제도 차이를 초월해서 우선 뭘 앞세워야 합니까. 하나의 민족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민간교류가 많지 않았습니까. 저희도 남쪽에서 여성들의 민간교류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우리들끼리 직접 하기가 어려워서 일본이 중재를 서가지고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라는 국제심포지엄에 남과 북의 대표들을 초청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2년도에 우리가 북에 가고 그 전 해에 북쪽에서 여연구 대표를 중심으로 해서 북측에서 남쪽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13년전 아닙니까. 그때는 아무도 북에 가지 못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냉전보수세력들이 남쪽에서 괭장히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었던 때인데, 우리가 겁도 없이 여성 남북교류를 하면서 이런 일들을 우리가 남, , 일본 여성들이 합쳐서 해냈습니다.

또 문익환 목사의 방북, 그리고 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던 임수경의 통일운동과 같은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이 축적이 되고, 그 다음에 남북합의서가 이뤄진 이후에 남북간 회담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점점 가까이 가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남북 기본합의서에는 남과 북이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를 이루어내서 남북이 처음으로 서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게 되고 군사적 침략이나 파괴전복행위를 하지 않고 상호 교류협력을 통해서 민족의 공동발전과 점진적, 단계적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양적으로 축적이 돼가지고 6.15공동선언이 있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7.4공동성명은 유신정권을 강화하는데 이용당했기 때문에 실천이 안되었고, 남북 기본합의서도 6공화국에서 채택이 된 이후에 문민정부에 들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해서 거의 남북문제가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5년동안 우리가 허송세월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남북합의서를 만들어놓고 실천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괭장히 불행한 일이었고 5년동안의 문을 닫은 상태가 그냥 5년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남북관계에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6.15공동선언이 있었을 때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만큼의 민족적인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온 민족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에 일본에서도 민단과 조총련이 One Korea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후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지만 또다시 6.15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서 정말 6.15선언에 버금가는 일들이 괭장히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가 남쪽은 남쪽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서로 통일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2. 6.15공동선언의 의미와 그 이후의 변화

6.15공동선언이 갖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제가 남북관계에서 질적인 전환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보면 남북정상회담은 전쟁을 방지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북쪽에서는 우리를 흡수통일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남쪽은 어떻습니까. 혹시 북이 우리를 적화통일하지 않을까 하는 위협에 시달렸지요. 그래서 서로가 의심하는 이런 두려움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두 정상이 만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는다, 남침도 없고 북침도 하지 않겠다 하는 것을 약속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보위협을 근본적으로 해소해 나갔다는 거지요. 그래서 실제로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남북사이의 긴장이 대폭 완화되고,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또 재외동포는 재외동포대로 의식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몇가지 사례를 든다면, 전에는 한 10년전만 해도 남북간에 무슨 긴장되는 일이 벌어지면 남쪽에서는 주식이 떨어지고 그 다음에 사재기를 했습니다. 사재기가 뭡니까. 혹시나 전쟁이 나면 먹을 식량들을 사가지고, 라면도 사고 쌀도 사고 물도 사가지고 대결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수 없이 벌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날까봐 두려워서 이민을 갔습니다. 이렇게 서로 의심하고 내면적으로 두려움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의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지금은불바다’발언보다 열배나 더 강한 이야기가 있어도 아무 동요도 없습니다. 주가가 폭락합니까? 주가가 승승장구합니다. 요즘은 교육 때문에 이민가는 사람은 있어도 전쟁위험이라고 이민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남쪽의 의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예를 들면, 『문화일보』와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조사한 것인데, “만일 미국이 한국정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북을 공격한다면 어느쪽 편을 들겠느냐”를 우리 남쪽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47.6%북쪽 편을 들겠다”고 했고, “그래도 미국을 지지하겠다”가 31%였습니다.

이게 뭡니까? ‘우리 민족끼리’입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민족공조의 싹이, 남북의 신뢰, 이런 것들이 실질적으로 싹트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지금 열린우리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정책을 계승해서 남북문제를 진취적으로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발표된 것입니다. 남측에서 북측에 200KW 송전을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 남쪽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찬성한다”가 59%, 거의 60%에 가깝고반대한다”가 37%였습니다. 그리고참여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에 노력했다”는 것이 62.8%나 되고, 이렇게 지금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경우도퍼주기”라는 말을 이 당이 만들어냈고 남북문제에 대해서 비난 일변도였는데, 최근 한나라당의 혁신위원회가 당 강령에서 남북문제를 상호주의에서 남북협력주의로 바꾸기로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호전될 수 있는 환경은 제도면에서도 그렇고 의식면에서도 굉장히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산가족들을 100, 100명씩 해보면 다 만나는데 한 30년이 걸린답니다. 그동안에 다 돌아가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해서 남쪽이 IT강국 답게 화상연결을 해서 화상으로 만나기로 하자고 제안을 해서 북쪽이 그걸 적극적으로 환영해서 받아들였습니다. 8 15일에 첫 화상 이산가족 상봉을 합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남북의 광케이블을 연결했습니다. 이 광케이블을 연결하면 남북간의 화상회의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로 지형이 변하게 됩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화상으로도 추진하고 만남으로도 추진하고 금강산에서 면회소를 설치하게 되면 이산가족 문제는 조만간 우리가 원했던 대로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금강산관광이 열렸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했느냐 하면 총 100만명이 했습니다. 어린이로부터 노인까지 다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남쪽에서 금강산이라는 땅을 한번 밟아보고 북의 안내를 받아서 북쪽의 민간인을 접해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의식의 변화를 갖다 줍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경우도 북쪽 사람에게는 뿔이 달렸다고 암암리에 옛날부터 잠재의식속에서 생각했다가 아, 북쪽땅 금강산을 가니까 너무 물이 맑고 너무 아름다운 강산을 경험하게 되고, 북쪽의 안내원을 만나도 아 뿔이 안달렸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게 엄청난 민간교류입니다.

이제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금강산관광의 길이 열렸는데 옛날 같으면 남북관계가 교착상태가 되고 정지되면 금강산관광도 안되지요. 그런데 이제는 남북 장관급회담이 정지되고 교착상태가 되어도 남쪽사람들이 금강산관광을 가고 있습니다. 의식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금강산관광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민간교류의 흐름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하나되는 날도 점점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철도와 도로 연결입니다.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와 철도 연결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저는 환경부 장관이었을 때 DMZ 저쪽까지 들어가 가지고 북쪽이 바라다 보이는 공사판 현장까지 가본 일이 있습니다. 그쪽의 생태계를 보기 위해서 남쪽의 최북단까지 가본 경험이 있는데, 이렇게 북쪽의 군인과 남쪽의 군인이 만나 같이 공사를 하고 도로를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금년 10월경에 열차 시범운행을 하고 도로 개통식을 하기로 합의를 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합의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은 마무리단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경의선 철도 연결 공사장에서 제가 가서 보니까, 남쪽 북쪽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서로 협력해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참 아름다웠고 아, 하나의 민족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감동적이지요.

그런데 이 철도와 도로 연결이라는 것은 끊겼던 남북의 혈맥이 이어지는 의미가 있고, 거기다가 이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면 그 도로를 통해서 우리는 유라시아로 뻗어가는 대동맥의 복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동북아시대에 있어서 남북이 공히 대륙의 종착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를 바라보고 합의를 이루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