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과 민족통일〉강연회에서 한 한완상 선생의 강연
〈6.15공동선언과 민족통일〉강연회가 지난 10월 4일 이 강연회 실행위원회의 주최와 조국평화통일협회의 후원밑에 도쿄에서 진행되었다. 도쿄와 인근 각지에서 모여 온 약 300명 재일동포들 및 내왕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강연회에서는 일본을 방문한 이남의 한성대학교 총장이며 전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한완상 선생이 강사로 출연했다. 아래에 한완상 선생의 강연 요지를 소개한다. (편집부)
우리
민족의 저항적 민족주의, 열린 민족주의일본에
와서 재일동포들을 보니까 한쪽으로는 기쁘고 한쪽으로는 슬픕니다. 여러분들이 조국도 아닌 외국, 이 땅에서 어떤 분은 태여나고 어떤 분은 어릴 때 와서 오늘까지 이렇게 사시는데 여러분들의 삶 자체가 우리 민족이 밟았던 고난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보면 비극적인 민족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36년간의 일제 식민지통치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3세계 나라들과 같이 식민지지배가 끝난 다음에 민족이 통일통합되고 번영으로 힘차게 나아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만은 해방이 되지 않고 민족이 분단되었습니다. 식민지시대에서 민족통일과 통합, 번영의 시대로 가지 못하고 분단의 시대로 바뀌어졌습니다. 그 사이 여러분들은 조국도 가지 못하고 고향도 가보지 못하고 정말로 괴로운 나날을 많이 보냈을줄 압니다.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 저는 역사학자는 아닙니다만 김구 선생을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께서 태평양전쟁이 끝나기 전에 태평양전쟁에 참가하기 위해서 미국과 합동훈련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태평양전쟁 참전준비를 하고 있는데 8월 15일에 갑자기 종전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우리 민족이 해방되었으니까 기쁠텐데 일본 천황의 항복소식을 듣자 김구 선생은 한탄을 하셨습니다. 아, 앞으로 국제무대에 우리 민족의 목소리가 커질 수 없게 되었구나고. 그리고 김구 선생이 염려한 대로 남북은 분단되기 시작했습니다. 38선은 사실은 우리 조국 반도에 있는 일본군을 해체하기 위해서 잠정적으로 그은 선인데 이것이 민족분단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정말 슬픈 역사였습니다.저는
이런 이야기를 일본에 와서 한 지식인으로서 해야 될지 안해야 될지 망설였습니다만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일본입니다. 패전국은 일본제국주의입니다. 그러면 분단되어야 할 나라는 어느 나라이겠습니까. 우리가 미국과 전쟁을 했습니까? 그런데 우리 민족이 두 동강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습니다. 요즘 납치사건 때문에 일본 여론이 들끓는 것을 보면 한 옛날 생각을, 아주 가슴아픈 더 큰 역사적인 아픔을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이
민족분단이 고착되면서 남과 북은 다른 민족들보다 더 서로를 미워하면서 지난 반세기를 보내왔습니다. 이 분단을 고착시키고 합리화시킨 것이 냉전이데올로기입니다. 냉전체제, 냉전구조, 냉전규범, 냉전사상, 이런 것이 결국은 남과 북의 대결을 더 합리화시키고 악화시켜서 오늘까지 왔습니다.그러나
제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우리 민족의 저력에 대해서 한두마디 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우리
나라를 36년동안 부당하게 강점하고 우리의 성과 이름까지 빼앗고 대륙진출을 위해서 우리 반도를 자기들의 병참기지로 활용했던 일본제국주의는 침략적 민족주의에 기초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가졌던 민족주의는 그러한 침략적 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르게 정당한 저항적 민족주의였습니다. 이것은 동학농민운동이나 3.1운동의 예를 들지 않아도 여러분이 다 아시는 상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닫힌 민족주의를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닫힌 민족주의란 히틀러 나치나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서 남의 나라를 침탈해서 그 나라 물건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전통과 문화를 파괴한 민족주의인데 우리는 인권과 평화와 정의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열린 민족주의였습니다.저는
각료로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여러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김영삼 정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는 구절을 내가 썼을 것이라고 해서 야당 국회의원들이 당신 이론이 뭔가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민족주의는 열린 민족주의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수천년동안 중국의 한 변방에 붙어 있으면서도 중국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우리 민족의 문화, 언어, 풍습, 전통을 지켜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그만한 나라에 외국사람들이 많이 오고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여러 사상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그 외래사상이 우리 민족문화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그 외래사상들이 우리 땅에 와서는 전부 다 아름답게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 언어, 우리 풍습, 이것이 중국과 비슷한것 같지만 우리의 독특한 것을 지켜 온 자랑스러운 민족입니다.제가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분단은 불과 50여년이지만 수천년의 우리 민족의 통합역사에서 보면 짧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합니다. 이 짧은 시기에 불행히도 여러분과 제가 살았습니다. 이 에피소드에 불과한 짧은 경험을 가지고 우리 민족의 저력과 긴 통합의 역사를 평하지 말아라는 것 때문입니다.이
시각에도 부산에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고 얼마전에는 월드컵 경기가 열렸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감짝 놀랐습니다. 민족의 저력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습니다. TV를 보니까 부산의 나이 한 50쯤 되는 사람이 북한 응원단 옆에 가서 응원하고 싶은데 왜 못하느냐고 불평을 말했습니다. 부산이 어떤 도시입니까. 남한에서 제일 보수성이 강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거기의 젊은 사람도 아닌 중년이 북한 응원단 있는데 가서 동족으로서 같이 응원하고 싶은데 왜 멀리 떨어져 앉아야 되느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왜 옷을 붉은 옷을 못입게 하느냐고도 했습니다.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라고 해서 그 옷을 거의 모든 국민들이 입고싶어 했습니다.그때
제가 느꼈습니다. 우리 60∼70대 세대가 가졌던 분단이데올로기, 냉전의식은 사랴져 가는구나고. 더구나 그 상징인 ‘붉은 악마’라는 것은 냉전시대에 남쪽에서는 가장 소름 끼치는 상징이었습니다. 악마는 종교에서 말하는 가장 나쁜 상징이고 붉은 색은 분단이데올로기에서 나온 아주 고약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역시 5천년의 통일문화와 풍습을 가진 민족적 유대라는 것이 잠시 에피소드와 같이 지나가는 반세기의 경험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 민족이 위대하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했습니다.지금
부산에서는 경기대회 외에 북한 여자 응원단 때문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기자들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야단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젊은 여자 응원단도 처음에는 긴장한 것 같은데 차차 풀려 갔습니다. 제가 떠나기 전날 우리의 딸인 북한의 이성희가 역도 세계신기록을 내고 금메달를 탔는데 소감을 물으니까 같은 민족의 숨결이 있어서 이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선수도 불과 열흘전에는 그런 현실을 체험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와서 민단과 총련이 왜 서로 싸워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도 장구한 5천년 역사에서 보면 잠시동안의 싸움입니다.적대적
공생관계에서 우호적 공생관계에로여러분
, 나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적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오늘 혹시 여러분이 듣기 싫은 소리가 있을지 몰라도 양해를 구하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손가락에 더럽게 때가 묻었는데 누가 나에게 진리란 뭐냐고 물었을 때 가령 달을 진리라고 합시다. 그래서 저 달을 처다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달을 쳐다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묻은 때를 보면 곤난합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봐야 합니다.여기
와서 하루 이틀동안 TV, 신문을 보니까 여기서도 저기서도 전부 납치사건입니다. 사실 납치사건 자체는 잘 한 것이 아닙니다. 비정상적인 시대에 비정상적으로 나왔던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그 잘못을 시인했을 때에는 손가락 때를 보지 말고 더 미래지향적인 이 나라와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통합과 통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서 세계평화와 번영을 가리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번에 그것을 밝힌 것 자체는 대단한 용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치적 정직성을 평가하면서 제가 몇가지 고언을 하겠습니다.지금
남북간의 분단이 고착되는 과정에서 이 고착을 촉진시키고 합리화해서 지속시키고 재상산시키는 요인이 냉전사고라고 할 때 이 냉전사고는 종교에서 말하는 근본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근본주의는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고 세상을 이분법으로 봅니다. 그리고 나는 선이고 너의 악은 영원불변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악한 너와는 화해를 할 수 없고 대화를 할 수 없고 너는 초전박살을 내야 할 주적이다. 이렇게 보고 또 나와 너 사이에 중간에 끼는 모든 것은 불순하고 나아가서 이적성을 띤다고 합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남과 북은 서로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남쪽에서는
이것이 반공이데올로기로 정착되면서 주로 일제시대에 부끄러운 일을 많이 했던 사람들이 그 우산밑에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북은 북대로 6.25라는 열전 이후에 역시 반미, 반제, 반남 노선을 강화하면서 그 나름대로 냉전이데올로기를 강화해 왔습니다. 이렇게 되는 가운데 남과 북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이 악화가 계속되는 배후에 적대적 공생관계가 있었습니다.이
적대적 공생관계란 겉으로는, 공식상은 가장 주적으로 보면서 미워하며 욕설하고 서로 제거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런 두 관계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에 도발을 했을 때, 한쪽이 다른 쪽을 아주 성나게 하면서 사건을 일으켰을 때 겉으로는 가장 격렬한 비난을 하면서도 사실은 양쪽이 공생관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서해교전사건 때 남쪽에서는 저같은 사람 입장이 가장 곤난했습니다. 평소에 북하고 대화를 하자, 화해협력을 하자, 이런 사람들의 입지가 확 풀어지고 어떤 사람 목소리가 가장 커집니까? 초전박살 내야 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우리같은 평화주의자들은 목소리가 삭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쪽에서 무슨 훈련을 한다고 하면 북쪽에서는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선호하는 사람들보다는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더 좋아지고 그들 목소리가 커집니다. 결국 남북의 긴장이 격화되면 누가 좋아하느냐 하면 북이나 남이나 강경주의자들 입장이 좋아지는 것이고 그들 입장이 좋아진다는 것은 남북관계가 더 악화된다는 것입니다.저는
이처럼 이상한 적대적 공생관계를 수십년동안 몸을 떨면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10년전에 통일부총리였을 때 대통령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남북관계를 책임진 사람이니까 대통령에게 지금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쪽이 북쪽보다도 경제적으로는 14배, 15배 앞섰다. 그러니 이제는 북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냉전적으로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초전박살 내기보다 껴 안을만큼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 그리고 대통령도 나도 교회 장로인데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설령 북이 원수라고 생각하더라도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만이 나도 변화하고 상대방도 변화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이인모 노인이 몇달 견딜것 같지 않다. 인도주의 입장에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인도주의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배풀어주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배풀어준다, 이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장의 논리입니다. 인도주의 논리는 너는 나에게 하나도 안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에게 준다, 이것입니다. 저는 이 때문에 국회에서 많이 당했습니다. 이인모를 보내고 받은 것보다 준 것이 더 많은 이런 감상주의자가 어디 있느냐고. 그래서 남북관계에 있어서 기계적 상호주의, 하나 주면 하나 받는 이런 식으로 하면 나중에 민족이 다 병신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이런
적대적 공생관계가 하루빨리 우호적 공생관계로 바꾸어져야 하는데 이렇게 바꾸는데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6..15공동선언입니다. 그런데 이 6.15공동선언도 이제 2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나도 이제는 70이 다 되어 가서 시간이 없는데 통일되는 것을 보고 죽든지 해야 될게 아니예요. 이제 불과 한달 두달 사이에 본격적으로 6.15선언의 갑판은 물꼬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지난
10년동안에 일어난 조국과 주변의 상황변화그간
조국의 주변에서 일어난 상황의 변화를 점검해보기로 하겠습니다.지난
10년간을 보면 세계적으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질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냉전체제가 해체되었습니다. 그래서 구 소련체제가 무너지고 지금 중국은 경제는 자본주의체제로, 정치는 사회주의체제로 병행하면서 독특한 중국식 모델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정치와 경제를 동시에 체제를 바꾸는 길로 나가고 있습니다.그간
남쪽에서는 군사권위주의가 일단 종식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가 부분적으로 확실하게 진전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민주주의는 요원합니다. 아직도 남쪽의 지배계층속에 냉전의식이 깊이 잔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틀어내는데는 시간이 걸릴것 같습니다.북한에서는
그동안 참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유훈통치 4년이 지나고 1990년에서 1998년 봄에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궁핍을 겪었습니다. 마이너스 4·3퍼센트의 성정율이었습니다. 이를테면 90년의 국민총생산이 231억달러였는데 8년후는 그 절반에 가까운 126억달러로 떨어졌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8년동안에 반으로 떨어진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공장가동율은 30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궁핍화가 이루어지고 국제적으로는 핵문제 때문에 철저히 고립되었습니다.이렇게 되니까 제가 10년전에 통일부총리로 임명받았을 때 대통령께 지금 우리가 북보다 14배, 15배 더 잘 산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은 30대1정도로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불어졌습니다. 이 남북간의 힘의 불균형, 이것이 사실은 남북간 화해협력에 상당히 장애로 됩니다.남쪽은
어떻습니까. 남쪽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차이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남쪽의 경제력은 몇년동안 상당히 양호합니다. 제가 1994년 5월에 대통령특사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권주의자 대통령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 갔습니다. 그때 아시아에서 서른 몇개 나라에서 왔는데 그때 제가 처음 알았습니다. 아세안 6개국의 GNP는 다 합쳐도 남한을 넘지를 못했습니다. 또 군사력도 북한과 공포의 균형을 이룰만큼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군사력과 경제력의 차이가 없으니까 남쪽의 군사부분 목소리가 높아질 이유가 없습니다.이럴때
정말 중요한 역사적 리더십이 어떤 것인가, 이것은 군사력을 더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을 높이는 쪽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력, 이것이 정말 민족적으로도 평가받고 세계적으로도 평가받는 리더십입니다. 이 리더십이 나타나고 있는것 같습니다. 나는 신의주특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걸 더 일찌기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6.15
공동선언의 의미와 남북관계 변화의 조짐여러분
, 남북관계를 경험적으로나 리론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해온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남북관계를 푸는 방법에 있어서 제일 나쁜 방법은 전쟁을 통해서 남북통합을 하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을 고립시켜서 변화를 일으켜 보겠다, 이것도 안됩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협상과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의 진전, 이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그간 남북간에 있었던 여러가지 중요한 역사적 성명들이 있었습니다. 70년대의 7.4공동성명, 90년대의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2000년의 6.15공동선언이 있었는데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