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대결 4년에 대한 검증()

 

강 민 화^조국평화통일협회 홍보국장

   

3단계 (2002.102003.8)

 조미 고위급회담의 진상

 부시 정권 출범후 또다시 첨예화된 조미간의 대결이 드디어 본격화되었다.그 발단은 2002 10 3일부터 5일까지 이북과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갔던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동아시아·태평양 담당)사이에서 진행된 조미 고위급회담이었다.

 미국측은 10 16, 국무부 성명을 통해서 이북측이 켈리와의 회담에서 농축 우라늄에 의한 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북측의 주장은 그것과 달랐다. 10 25일에 발표된 이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g미국측은 우리가 핵무기 제조를 목적으로 농축우라늄계획을 추진하여 조미기본합의문을 위반하고 있다고 걸고 들면서 그것을 중지하지 않으면 조미대화도 없고 특지 조일관계나 북남관계도 파국상태에 들어 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h기 때문에 g우리는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미국의 가중되는 핵 압살위험에 대처하여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주었다h고 그날의 조미 고위급회담에서 오고 간 내용을 보다 상세히 언급했다.

 그리고 g우리는 최대의 아량을 가지고 미국이 첫째로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둘째로 불가침을 확약하며 셋째로 우리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이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 주었다h고 자기들이 회담에서 주장한 내용도 밝혔다.(조선중앙통신 02.10.25)

 그후 시간이 갈수록 조미 고위급회담에 임했던 이북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g(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 시인은)우리 얘기를 과장한 것이다h( 시사저널 11.21) 라고 한 발언과 g북한은 10월 초, 평양에서 열린 조미 고위급회담에서 조지 W.부시 대통령의 방북 등 4가지 조건을 미국측에 제시했다.h(동아일보 02.11.28)는 보도, 그리고 11 2일부터 5이까지 평양을 방문한 전 주한 미국대사 도널드 그래그가 11 6일에 서울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g북의 핵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NCND(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정책 유지이다h라고 발언(연합뉴스  11.6), 또한 11 13일에 이북의 고위관계자가 인터뷰에서 g(제네바)기본합의가 잘못됐다거나 파기돼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이 먼저 들고 나왔다h고 한 발언(연합뉴스 11.13)들을 통해서 회담의 전모와 진상이 점차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이때부터 불거졌던 북핵문제란 이북이 조미 제네바합의를 위반해서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생긴 것이 아니라 미국이 북을 e악의 축f, e핵 선제공격 대상f으로 규정함으로써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로 오만한 자세로 나온 켈리에 대해서 이북측이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킬 강한 의사를 표시했으며,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미 불가침조약을 제의했다는 것이 바로 조미 고위급회담의 진상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조미 핵대결이 시작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당초 미국측은 부시가 10 21일에 기자회견에서 g우리는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본다. 핵 개발이 드러난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h (중앙일보 02.10.23 )고 말하고, 10 27일 멕시코에서 여린 한, , 일 정상회담에서도  g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h하고 g두 나라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e대담한 접근법f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h고 표명하는 등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심지어 11 18일에는 국무장관 파월이 g미국은 북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있다h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말뿐이라는 것이 드러나는데는 오랜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미국의 전 국방차관보 대리 캠벨은 11 10, 도쿄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g미국의 당면목표는 이라크문제에 전념하는 것이며 북조선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대이라크정책과 마찬가지로 체제e개혁f이 아니라 e붕괴f를 지향하게 된다h(아사히신붕 02.11.11)고 말했다.

 또한 12 27일부 w뉴욕타임스x지는 고립을 통한 국제규범 수용 혹은 붕괴를 기조로 하고 이를 위해 봉쇄정책을 주요수단으로 하는 대북정책(맞춤형 봉쇄정책)이 미 국가 안보회의에서 채택채택되었다고 보도하고 미국의 종합교양지 w뉴요커x(03.1.27)는 g미국은 이라크에 이어 김정일 정권의 축출을 기도하고 있다.h (동아일보 03.1.20)고 전했다.

 그리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인 2003 4 13, 미 국무장관 파월은 BBC방송에 출연해서 g이라크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은 북과 이란 같은 국가들에 본보기가 될 수 있다h고 말했다.

 이 몇가지 자료나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북핵문제를 e우려f한다고 했던 부시 정권의 진짜 목적은 이북의 체제전복이었다. 따라서 e핵문제f란 어디까지나 모양새에 불과했으며, 이북에서 그 본질을 자기들의 자주권, 생존권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하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때문에 위에서 본 2002 10 25일부 이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g작은 나라인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문제 해결 방식의 기준점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의 제거이다h고 하면서 g이 기준점을 충족시키는데는 협상의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억제력의 방법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될수록 전자를 바라고 있다h,g우리는 조미사이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핵문제 해결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로 된다고 인정한다h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g북조선이 제안한 불가침협정은 현안이 아니다.h(국무부 대번인 바우처 03.1.4)고 이를 한사코 외면했을뿐 아니라, 저들의 진짜 목적인 이북의 체제 전복을 위해 정치(외교), 경제, 군사 등 각방에 걸쳐 압력을 가해 나갔다.

 그러나 이같은 대북압력들은 효력을 내었거나 성공했는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래에 다시 그 상황들을 재현해보기로 한다.

 대결@ 중유제공 중단 대 NTP탈퇴

 (조선)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2002 11 14일 집행이상회에서 대북 중유지원을 12월부터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조미 핵대결이 시작되어 처음으로 취해진 실제적 조치였다.

 그러나 세게를 놀래운 것은 이 조치보다도 그에 대해서 보다 강경한 자세로 나간 이북의 대응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무렵 이북의 조국통일연구원 연구사가 이남의 주간잡지 w시사저널x과의 인터뷰에서 g미국이 중유 공급을 중단할 경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h라는 질문에 g우리는 그 이상의 것도 가상하고 있다h고 답변(시사저널 02.11.21)한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북에서는 이같은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

 중요공급의 중단을  g조미 기본합의문의 여지 없는 위반h(외무성 대변인 담화 11.21) 이라고 강력히 비난한 이북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e(대북)핵포기, 사찰수용 결의안f(11.29)을 g받아들일 수 없다h고 일축(백남순 외무상 12.2)하고, 11 21일에는 KEDO관계자의 입국을 금지했다.또한 12 12일에는 g부득불 조미기본합의문에 따라 중유제공을 전제로 하여 취했던 핵동결을 해제하고 전력생산에 필요한 핵시설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하기로 하였다.h고 하면서  g합의문이 완전히 깨어지게 된 책임한계를 명백히 그어야 할 때가 왔다h고 강조(외무성 대변인 담화)했다.

 그리고 12 13일에는 이북의 리재선 원자력총국장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서한을 보내고 모든 핵시설의 봉인과 감시카메라의 제거를 요청하고, 12 21일에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봉인과 감시카메라 등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또한 12 22일에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 g제거작업 확인h에 대해서 발표했으며 12 23일에는 영변 핵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에 대한 봉인 제거에 착수하고 12 27일에는 리제선 총국장이 IAEA사찰단 추방 결정을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에 통보했다.

 그리하여 이북은2003 1 10, 정부성명을 발표하고 마침내 핵무기확산방지조약(NTP)으로부터의 탈퇴를 표명했다. 같은 날 이북의 백남순 외무상은 유엔 안전보장이상회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탈퇴 조치는 1 11일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통고했다.

그런데 미국측은 g북조선의 NTP 탈퇴 결정은 국제사회에 중대한 우려사안h이라고 했으나 g그러나 미국은 북을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다h(백악관 대변인 애리 프라이셔 1.10)고밖에 말못했다.

 이북의 초강경 압박공세는 그후도 계속되었다.

 이북의 국가계힉위원회는 1 13, 조선중앙방송을 통해서 g앞으로 자체적인 평화적 핵동력공업을 발전시켜 나갈 것h이라고 표명하고, 외무성 대변인은 2 5,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g전력생산을 위해 영변의 원자로에 대한 재가동작업에 들어갔다h고 밝혔다.

 백악관은 7 15,g북조선이 핵 연료봉 재처리작업 완료를 미국에 통보해왔다h고 확인했다.

 대결A e유엔 안보리 회부f와e제재f대 강경선택권

 핵문제로 조미대결이 본격화되자 미국은 지난 1990년대 초기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사회에 끌고 가려 하거나 이북에 대해서 e제재f를 가하려 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국무장관 파월이 2003 1 19 CNN방송에 출연해서 미국은 북 핵사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거나, 국무부 대변인 바우처가 1 22일에 이북의 NPT 탈퇴는 유엔 안보리에 보고돼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등 어떻게 하나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 했다.

 이 유엔 안보리 회부문제에 대한 이북의 입장은 1990년대 초기부터 일관했으나, 이번에도 g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핵문제로 제재를 결정한다면 선전포고로 간주한다h(박길연 유엔 주재 대사 03.1.10)고 그 입장을 재천명했다. 또한 조미 양사 사이에서 해결되어야 할 e핵문제f의 e국제화f를 단호히 반대하며 유엔 안보리는 미국의 책임도 공정하게 따져야 한다(박길연 대사 2.13), g핵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는 내정간섭h(조선중앙통신 2.13), g유엔 안보리에서의 그 어떤 결정도 인정하지 않을 것h(북 외무성 대변인 성명 4.6), 안보리 회부는 g전쟁으로 가는 서곡h(박길연 대사 4.7)이라는 입장을 연이어 표명했다.

 이북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핵문제를 유엔에 회부하면 g부득불 비상시 행동조치를 예견하지 않으면 안될 것h(외무성 대벼인 담화 4.30)이며, g강력한 자위적 조치를 취할 것h(조선중앙통신 8.2)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1 20일에 열린 테러문제에 관한 유엔 안보리 이사국 외무장관급 특별회의에서는 북핵문제의 의제화가 유보되었으며, 4 8일에도 중국의 반대로 IAEA가 회부한 대북 비난성명(2.12)에 대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합의를 보지 못했다. 또한 4 9일의 유엔 안보리 비공개회의에서 북핵문제가 논의되기는 했으나 구체적 조치에 대한 합의 없이 끝났으며, 7 2일에 미국이 주도한 북핵문제와 관련한 의장성명 채택도 중국,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미국은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 했을뿐 아니라 이북에 대해서 집요하게 e제재f압력을 가하려 했다.

 2 17일부 w뉴욕타임스x는 미국 정부가 이북의 핵개발 강행에 대비하는 e제재안f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국방장관 럼즈펠드는 5 13일에 허드슨연구소에서 받은 질문에 답변하면서 g(북조선 식량난의)해결은 독재나 전체정치가 아닌 시장(경제)체제를 인정하는 것h이라고 말했으며 국방부 부장관 월포위츠는 5 31, 2차 아시아안보회의(싱가포르)에서 g미국은 북조선의 경제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북 핵위기를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h고 말했다. 그리고 2002 9월의 조일정상회담(평양) 이후 납치문제를 극대화해서 이북을 적대시하는데 앞장섰던 관방장관 아베 신조가 1 12일에 g북핵 위기가 고조될 경우 대북제재를 고려할 수 있다h고 말하는 등 일본이 여기에 적극 합세해 나섰다.

 이북은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서도 초강경으로 대응했다.

1 14일부 w로동신문x은 NTP탈퇴에 대한 대북제재와 봉쇄를 취한다면 g제2, 3의 선택권을 발동할 것h이라고 경고했으며,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은 2 17, g미국이 대북제재를 가하면 정전협정 의무 이행을 포기할 수도 있다h고 담화를 발표했다. 또한 백남순 외무상은 6 28, 핵문제와 관련해서 대북봉쇄가 허용되면 전쟁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유엔 안보리 이사국에게 서한을 보냈다.

 결국 당시 이북에 대해서 미국의 그 어떤 e제재f도 가하지 못했다.

 대결B 군사적 압력 대 사생결단의 대응

 미국의 대북 목조이기는 군사적인 위협과 압력으로써도 감행되었다.

 백악관은 북의 e핵문제f가 불거진 직후인 2002 12 10일에 대량살상무기 공격국가에 핵보곡 등을 가할데 대한 eWMD에 맞서는 국가전략f이라는 것을 발표했으며, 12 17일에는 부시가 e국가미사일방어(MD)체제 배치f 명령을 내렸다.

 그러다가 2003년에 가서는 2 7일 하루에만도 북핵문제와 관련해서 g모든 선택이 열려 있다h(부시), g우발상황에 대응할 단호한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h(프라이셔), g(이라크 다음에는) 북조선의 핵확산 위험에 대처해야 한다h(럼즈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