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의 선군정치와 한(조선)반도의 정세

이 대담록은 일본 도쿄에 있는 통일코리아연구소(http://unikorea.cool.ne.jp/)의 의뢰에 따라 통일학연구소(뉴욕)의 한호석 소장과 조국평화통일협회(도쿄)의 강민화 홍보국장이 뉴욕-도쿄간 전자우편을 통해서 진행한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차례>

1. 선군정치는 반제자주정치
2. 사상의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는 해결책
3. 쿠바 위기와 한(조선)반도 위기, 어떻게 다른가
4. 선군정치의 근원
5.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과 선군정치
6.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경험과 선군정치
7. 강병육성책, 군사중시정책을 넘어선 선군정치
8. 선군정치는 민족의 자주문제, 통일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가
9.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투쟁과 선군정치
10. 반통일세력과의 투쟁
11. 고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보는 시각
12. 재일동포사회의 시각에서 보는 조·일 관계 개선
13. 정세는 관망자가 아니라 실천가를 요구한다

1. 선군정치는 반제자주정치

강: 한호석 소장님이 이번에 발표하신 논문 「조·미 대결전은 또 하나의 분수령을 넘고 있다」를 잘 읽었습니다. 논문에서 지적되어 있는 것처럼 북(조선)측이 주동적으로 6자회담 테두리 안에서 조·미 대화를 진행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렸습니다. 한때 내외동포들은 물론 세계가 '이라크 이후'의 한(조선)반도 정세에 대해서 우려했던 것을 생각하면 6자회담의 개최는 커다란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얼마 전에 평양에 다녀왔는데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그 곳 사람들이 "우리는 대화에도 전쟁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를 상대로 하여 감히 전쟁을 도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던 말들이 생각납니다. 어느 의미로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 북(조선)의 독특한 정치방식인 선군정치의 위력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만일 선군정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사태가 오늘과 같이 전전되었겠는가고 생각되는데, 소장님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한: 잘 아시는 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는 선군정치라는 개념으로 표현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3년 '핵문제' 발생 이후 10년 동안의 조·미 관계를 알아야 하며, 거꾸로 오늘의 조·미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선군정치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미국의 지배세력이 제국주의 정책을 통하여 추구하고 있는 최대의 목적을 전세계에 대한 지배와 수탈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회주의 정치를 통하여 추구하고 있는 최대의 목적은 반제자주위업의 완전한 승리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천명한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도 현대 제국주의의 반사회주의 공세를 극복하는 반제자주위업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북(조선) 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북(조선)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은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에 의하여 추진되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이르러 그 과정은 3대 혁명에 더하여 선군혁명에 의하여 추진되고 있습니다. 혁명적 국가에서의 정치는 어디까지나 혁명을 위한 정치입니다. 그러므로 북(조선)의 선군정치는 선군혁명노선에 따라서 추진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군정치는 사회주의 정치의 기본방식이며, 선군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의 기본노선입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에서 선군정치라는 개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대외적인 의미규정인데, 현대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싸우는 반제자주정치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대내적인 의미규정인데, 북(조선)식 사회주의를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3대 혁명을 선두에서 이끌어주는 사회주의 정치라는 뜻입니다.

제기하신 질문내용에 맞춰, 반제자주정치라는 대외적 의미로 규정되는 선군정치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하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이해하려면 그가 정세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가 영도하고 있는 반제자주위업의 성격과 임무를 알아야 하고, 반제자주위업을 알려면 그가 해명한 현대 제국주의론부터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 정세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오늘 세계무대에서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자주력량과 지배주의세력 사이의 첨예한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이 문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7년 6월 19일에 발표한 논문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 데 대하여」의 첫 문장입니다.

내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재학하고 있던 시기에 현대 제국주의론을 정립하였습니다. 그가 정립한 현대 제국주의론은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론을 뛰어넘은 이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론은 1916년에 출판된 그의 저작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 정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시기에 유럽에서 발생한 제국주의의 본질을 해명하고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후단계로 인식한 것입니다. 레닌이 주목하였던 것은 자본주의의 최고발전단계인 독점자본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내부모순입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동성, 부패성, 취약성, 약탈성, 침략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최후단계의 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레닌은 그 내부모순이 제국주의 전쟁(제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하였으며 결국 사멸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론이 제국주의세력의 내부모순에만 주목하였을 뿐이고, 제국주의세력과 반제자주역량의 모순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라는 발전단계에 진입하였다는 언술은, 독점자본주의의 내부모순에 의해서 사멸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보다는 제국주의세력과 반제자주역량의 격렬한 투쟁에서 제국주의세력이 패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사멸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론이 지닌 이론적 한계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 다시 말해서 반제자주역량이 미약했던 시대의 한계를 반영한 것입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세기적 전환기에 반제자주역량은 지금에 비해서 훨씬 미약했습니다. 따라서 당시로서는 독점자본주의의 내부모순이 정세변화의 과정에서 지배적인 요인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의 정세변화는 레닌이 해명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을 제기하였습니다. 제국주의론은 고전적 해명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일어났던 새로운 변화들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책동 강화, 소련의 핵무기 보유와 우주개발 선점, 제3세계 반제자주역량의 장성, 그리고 쿠바 위기였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62년 1월 15일에 작성한 「현대 제국주의의 특징과 침략적 본성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보면, 현대 제국주의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제국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의거하고 있다는 점, 신식민주의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 미국을 두목으로 재편성되었다는 점, 쇠퇴·몰락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 사상의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는 해결책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대 제국주의론을 해명한 이후 또 다시 한 세대가 지난 1990년대의 정세는 질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질적 변화라는 것은, 미국의 '세계화' 책동의 강화,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제3세계 반제자주역량의 침체, 그리고 한(조선)반도 위기입니다.

1960년대 초에 제국주의와 반제자주역량의 첨예한 모순이 쿠바 위기로 표출되었다면 1990년대 초에 그 모순은 한(조선)반도 위기로 표출되었습니다. 쿠바 위기는 쿠바와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소련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이었습니다. 반면에 한(조선)반도 위기는 북(조선)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쿠바 위기는 소련의 정치적 패배로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쿠바 위기가 일어났던 시기에 정치·군사적으로 제국주의에 맞설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소련이 결국 정치적 패배를 당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패인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소련이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위협에 맞서서 끝까지 싸우려는 철저한 반제자주사상을 포기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 미국에 맞설 만큼 강한 물리력을 가지고 있었던 소련이 미국의 협박공세에 밀린 것은, 문제의 핵심이 물리력이 우세한가 열세한가에 있지 않으며, 사상의 대결에서 밀리면 힘의 대결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현실로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조선)반도 위기는 북(조선)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입니다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반제자주역량과 제국주의세력의 힘의 대결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 힘의 대결에서 이기는 비결은 사상의 대결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론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62년에 작성한 논문 「현대 제국주의의 특징과 침략적 본성에 대하여」의 끝부분에는 "인류는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조건에서도 침략전쟁을 막을 수 있으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다음의 구절은 제국주의 전쟁을 어떻게 막아내고 평화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인데, "사회주의력량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혁명력량이 단결된 힘으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전쟁책동을 걸음마다 저지파탄시키고 그들의 손발을 철저히 얽어매놓으면 전쟁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답변이 나온 때로부터 시대는 멀리 흘러갔고 그 사이에 사회주의 진영은 붕괴하였습니다. 일찍이 김일성 주석이 "공통된 정치적 및 경제적 기초에서 단결되어 있으며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의 건설의 동일한 목적으로 서로 연결된 하나의 전일체"라고 불렀던 바로 그 진영이 붕괴되었던 것입니다.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였던 1990년대의 정세는 1960년대의 정세와 달리, 세계의 반제자주역량이 단결된 힘으로 제국주의세력의 침략과 전쟁책동을 저지·파탄시킬 수 없게 되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습니다. 북(조선)은 홀로 사회주의의 기치를 들고 투쟁하게 된 힘겨운 조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북(조선)의 반제투쟁에 함께 할 동맹세력도 지원역량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단독으로 맞붙은 대결전에서 이겨야 하는 북(조선)에게는 반제투쟁을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정치방식과 혁명노선이 절실히 요구되었습니다.

핵문제를 들먹이면서 북(조선)에게 덤벼든 제국주의세력의 압력이 더할 나위 없이 가중되고 게다가 자연재해까지 겹쳐 경제적 난관이 가로막고 있는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어떻게 반제투쟁의 힘을 발동시킬 것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어서 해결책은 명백하였습니다. 그가 평소에 강조하고 실천하였던 그대로 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는 우선 사상의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 해결책이었습니다.

제국주의자들과 정면으로 맞붙은 사상의 대결에서 북(조선)이 이기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한 것이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입니다.

1993년에 클린턴 정부가 북(조선)의 핵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조·미 대결이 시작된 이래 올해가 꼭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라크, 소말리아,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또 다시 이라크가 차례로 제국주의세력의 군사공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나라들의 영토가 미국의 첨단무기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고 있을 때, 다음 차례는 북(조선)이 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임박했다는 말들이 꼬리를 물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감히 북(조선)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못하였습니다.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고 핵무기 보유를 통보하면서 미국을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마구 두들겨 패는 데도, 미국은 군사적 공격은 고사하고 항공모함 전단을 동해에 파견하는 공격준비태세도 감히 취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습니다.

북(조선)에게 마구 두들겨 맞은 미국이 반격을 가한 것은 신속배치여단 1개 소대병력을 남(한국)에 서둘러 급파하여 이른바 '적응훈련'을 실시한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신속배치여단 1개 소대병력은 경기도 포천에서 '적응훈련'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총련 학생들에게 장갑차를 점거 당하였고 미국 깃발이 자기들의 눈앞에서 불타는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최근에 북(조선)이 핵무기 실험을 강행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핵무기 보유사실을 입증하겠다고 말하면서 급소를 들이치고 있는 데도,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골머리만 앓고 있습니다. 핵무기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이라크에 대해서는 군사공격을 퍼부었던 미국이 핵무기 실험을 강행하겠다고 위협하는 북(조선)에 대해서는 왜 속수무책으로 골머리만 앓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3. 쿠바 위기와 한(조선)반도 위기, 어떻게 다른가

쿠바 위기 때 미국은 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쿠바 영토에 설치하는 것을 문제로 삼으면서 쿠바 해상을 봉쇄하고 소련에게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협박공세를 퍼부었는데, 오늘 북(조선)은 만일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봉쇄조치를 취하는 경우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쿠바 위기에서 이겼던 미국이 한(조선)반도 위기에서는 지고 있습니다. 정반대의 현상이지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그러한 현상의 뒤에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요?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 절대로 아닙니다. 북(조선)을 힘으로 거꾸러뜨려야 할 제1의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이 북(조선)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일단 사상의 대결에서부터 완전히 밀리기 시작하여 정치·군사적 대결에서도 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쿠바 위기에서는 반제자주역량이 사상의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물러섰지만, 한(조선)반도 위기에서는 제국주의세력이 사상의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물러서고 있습니다.

북(조선)이 지난 10년 동안 미국과의 대결에서 여러 차례 전술적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반제자주사상을 가지고 투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투쟁의 중심에 작용하고 있었던 힘은 언제나 선군정치와 선군혁명의 힘이었습니다.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조선)반도 위기를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에 의거해서 타개해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조·미 관계는 조·미 대결이었으며, 그 대결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사상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서 우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미 대결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과의 대결은 군사적 힘의 대결인 동시에 사상의 대결입니다. 나는 군건설과 군사활동에서도 사상론을 주장합니다. 군사적 타격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상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 위력은 원자탄보다 더 강합니다. 군사력에서 기본은 사람들의 사상의식입니다."

소련식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있었던 시기인 1992년 1월 3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경험과 우리 당의 총로선」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할 수 없다」(1993년 3월 1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1994년 11월 1일), 「사상사업을 앞세우는 것은 사회주의 위업수행의 필수적 요구이다」(1995년 6월 19일)라는 논문을 계속 발표하였습니다.

이 논문들에 흐르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은,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고 있는 대로, 사회주의 사상체계가 무너지면 사회주의 체제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북(조선)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고수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체계를 옹호·고수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된 이후 선군혁명으로 반제자주역량을 강화·발전시키고 선군정치로 반제자주사상의 힘을 발동시킴으로써 지난 10년 동안 계속된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여러 차례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만일 지난 10년 동안의 조·미 대결에서 북(조선)이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나의 견해를 반박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미국의 전술적 승리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증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1993년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조·미 뉴욕 공동성명 채택,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 채택, 1998년의 광명성 1호 발사, 2000년의 조·미 워싱턴 공동성명 채택, 2003년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폐연료봉 재처리, 그리고 핵무기 보유 사실의 통보와 핵실험 강행 의사표명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미국의 정치적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조·미 관계에서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만, 2000년의 6.15 공동선언 채택과 조·러 공동선언 채택, 2001년의 조·러 모스크바 선언 채택, 2002년의 조·일 평양선언 채택까지 감안한다면, 미국은 북(조선)과 벌인 10년 동안의 대결에서 정치적으로 완패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조선)은 조·미 대결에서 패하고 있는 북(조선)이 현재 궁지에 몰려있으므로 미국과 한(조선)반도 주변국가들이 북(조선)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떠드는 것이야말로 선군정치를 모독하는 발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4. 선군정치의 근원

강: 선군정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5년 1월 1일에 다박솔 초소를 현지시찰한 때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북(조선)에서 "총대로 개척된 혁명위업을 총대로 계승완성하자"고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상당히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서, 선군정치를 떠나서 오늘의 북(조선)을 알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일본에서 나오는 반북선전들을 보면 선군정치가 마치 체제유지를 위한 '군국주의화'나 '전쟁지향'과 같은 것으로 왜곡되어 있고, 또 동포들 속에서도 "사람들이 먹지도 못하는 데 무슨 군사중시냐", "총대에서 밥이 나오느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남녘동포들 속에서 북(조선)의 선군정치가 전쟁하자는 정치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을 막고 전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대로, 일제 식민지시기에 일제와 맞서 싸웠던 조선인 항일세력들은 여러 갈래였습니다. 총을 잡고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세력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혁명군대를 조직하여 군사전략을 수행하지 못하고 일제침략자들을 폭탄투척으로 응징하는 테러전술로 일관하였던 김구, 김원봉 같은 항일민족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혁명군대를 조직하여 투쟁하였으나 조선혁명이 아니라 중국혁명을 중심에 두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던 세력도 있었습니다. 김책, 최용건 같은 항일혁명투사들은 혁명군대를 조직하여 투쟁하였으나 정치투쟁은 전개하지 못하고 무력투쟁에만 집중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은 혁명군대를 지휘하면서 일제를 타격하는 무력투쟁을 벌였고, 동시에 일제를 반대하는 조선민중을 항일전선에 묶어 세우는 정치투쟁을 지휘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총과 정치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결합체였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혁명군대의 무력투쟁과 혁명조직의 정치투쟁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의 투쟁력으로 결합시켰으며, 혁명군대의 무력투쟁을 앞세우고 중시하면서 동시에 혁명조직의 정치투쟁을 밀고 나갔습니다. 군사와 정치를 결합하되 군사를 앞세우는 방식이었습니다. 군사와 정치를 결합하되 군사를 앞세우는 항일혁명노선은 김일성 주석이 개척한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역사적 사실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노선은 혁명운동에서 총과 정치가 하나이며, 혁명은 총을 앞세우면서 총과 정치를 하나의 투쟁력으로 결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은 선군정치, 선군혁명이라는 개념을 정립하지는 않았으나, 선군정치와 선군혁명의 길을 처음으로 개척하였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이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5.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과 선군정치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세 가지 각도에서 해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제국주의론,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경험에 관한 총화가 그것입니다. 현대 제국주의론과 선군정치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논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과 선군정치의 연관성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합시다.

내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은 1980년대 중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립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주체사상 연구자들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이 주체사상체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며, 따라서 매우 복잡한 고도의 이론체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대담에서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을 논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 아니하므로, 복잡한 이론적 해명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 독창적인 사상은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주체로 결합된 것을 해명한 내용입니다. 나는 선군정치를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에 의거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사를 중시하고 앞세우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닙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대국을 건설했던 영웅적 정치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군사를 중시하고 앞세웠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강성·부흥했던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왕들은 모두 군사를 중시하고 앞세웠던 군사전략가였으며, 군사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사강국의 군사중시정책과 북(조선)의 선군정치는 다릅니다. 근대 이전의 시기에 군사를 중시하고 앞세웠던 군사강국에서는 군대를 전쟁도구로 보았습니다. 오늘날 제국주의자들이나 군국주의자들도 군사를 중시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군사의 직접적 담당자인 군대를 전쟁을 위한 도구로 보는 전근대적인 전쟁도구설에 매달려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군대는 침략전쟁의 도구입니다. 전근대적인 전쟁도구설에서 탈피했다고 하는 경우에도 군대는 전쟁을 수행하는 특수집단으로, 또는 국방사업의 담당자로 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군정치는 전근대적인 전쟁도구설과는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선군정치는 '선군'이라는 개념과 '정치'라는 개념을 하나로 결합시킴으로써 군대를 국방사업의 담당자로 보는 견해에 머문 것이 아니라 정치의 한 주체로 보고 있습니다. 군대는 인민과 더불어 사회주의 정치의 주체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주의 정치를 선도하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북(조선)의 사회주의 정치는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주체로 결합되는 것이므로, 군대를 사회주의 정치의 선도적 주체로 본다는 말은 수령, 당, 대중을 하나의 주체로 결합시키는 데서 군대가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는 군대만 강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혁명진지 전반을 튼튼히 다지게 하였습니다."고 말했으며, "당의 선군정치에 의하여 우리 혁명의 주체가 더욱 강화되고 혁명적 군인정신과 투쟁기풍, 생활기풍이 온 사회에 차넘치게 됨으로써 혁명과 건설 전반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6.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경험과 선군정치

다음으로 논할 것은, 선군정치의 의미를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경험에 관한 총화라는 또 다른 각도에서도 해명하는 문제입니다.

소련식 사회주의의 붕괴는 세계화 전략의 출몰과 맥을 같이하였습니다. 세계화 전략의 출몰은 지난 시기 제국주의의 지배력이 세계적 범위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었던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짐으로써 생겨난 결과였습니다.

위성방송과 인터넷 통신망의 급속한 발전추세에 의해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된 세계화 전략은 '미국적 가치'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조작하고 민족어와 국가주권의 경계를 철폐하는 세계통합을 실현함으로써 결국은 제국주의적 지배와 착취를 세계화하려는 책동입니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졌던 1990년대 초 이후 미국의 세계화 전략은 그 어떤 세력이나 그 어떤 국가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기세로 몰아치며 지구를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세계화 전략을 거부하는 대상은 예외 없이 미국의 무력침공을 받아야 했습니다. 세계화 전략의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그 어떤 세력이나 그 어떤 국가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대외정책의 기본방침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화 전략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면서 미국의 세계지배정책에 타격을 가하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북(조선)입니다. 북(조선)은 자주화 전략을 내세우면서 선군정치와 선군혁명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미국의 세계화 전략이 지구를 휩쓸고 있는 시기에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이 정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미국의 세계화 전략의 추진은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을 정립시킨 객관적 조건입니다. 나는 선군정치, 선군혁명의 의미를 한(조선)반도적 차원만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선군정치는 한(조선)반도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막아내고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입니다. 그러한 견해는 선군정치를 민족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견해입니다. 선군정치가 한(조선)반도의 사회정치적 현실에서 등장하였고, 선군정치를 논하는 주체인 우리 자신이 한(조선)민족의 구성원이므로 선군정치의 의미를 한(조선)민족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북(조선)에서는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이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의 사회주의적 혁명과 건설에 두루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적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체사상이 한(조선)민족의 역사 속에서 창시되어 민족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조선)민족의 사회역사적 현실을 초월하여 세계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을 이해하려면, 그것의 민족적 의미와 세계적 의미를 동시적으로 파악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북(조선) 인민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데 무슨 군사를 중시하느냐, 총대에서 밥이 나오느냐고 하면서 선군정치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물론 총에서 밥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것은 사람과 짐승이 똑같습니다. 사람이 만일 밥을 먹는 것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면 그것은 사람과 짐승의 차이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 아니 짐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것은, 밥을 먹는 것보다 더 귀중한 것을 위해서 밥을 굶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는 것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으나,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밥을 먹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혁명군대의 총에서는 밥이 나오지 않지만 밥보다 더 귀중한 가치가 나온다는 것, 다시 말해서 혁명의 총을 잡은 사람들이 사상정치생활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선군사상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북(조선)은 혁명군대를 강하게 유지하고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전체 인민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조선)이 만일 혁명군대를 유지·강화하는 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 노력, 자원의 상당부분을 인민경제발전에 집중적으로 투입한다면, 인민경제생활이 현재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부쩍 향상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혁명적 국가와 인민이 혁명의 총을 잡고 혁명적으로 투쟁하고 생활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은 고사하고 사상정치생활이 변질되거나 사회주의 체제 자체가 침체·와해될 수 있다는 것이 선군정치의 지론이며, 사회주의 건설과정의 역사적 경험의 총화입니다. 총을 잡느냐 아니면 총을 내려놓느냐 하는 것은 단지 군사전략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운명에 직결되는 최대의 정치문제라는 것입니다.

혁명군대를 가지고 있었어도 선군정치를 하지 않았던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의 운명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혁명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선군정치를 하지 않고 있는 중국이 사회주의 노선에서 이탈하면서 중국적 특색을 가진 자본주의로 차츰 변질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총(군사)과 밥(경제)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바라보는 견해야말로 사회주의 정치의 근본문제를 알지 못하는 천박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7. 강병육성책, 군사중시정책을 넘어선 선군정치

강: 북(조선)의 선군정치가 강병육성책과 군사중시정책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그 이상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소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한: 지금 어떤 사람들은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을 단순히 강병육성책이나 군사중시정책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그런 견해는 부분적인 것입니다. 강병육성책이나 군사중시정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조직이 일반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책략입니다. 군사를 홀시하였던 국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약에 빠져 국력이 쇠퇴하고, 외침을 막아내지 못하고 패망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어떤 나라가 군사중시정책을 실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판별하는 기준은 국방부의 지위, 군사비 지출, 국가산업의 군사화 수준, 국가적 차원의 전쟁기념사업 추진과 전쟁영웅 추앙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준으로 판별할 때, 오늘날 군사중시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나라를 지적하면 아마도 미국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미국 행정부에서 국방부의 지위는 국무부와 더불어 미국의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중심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한복판에는 체사픽만을 거쳐 대서양으로 흘러나가는 포토맥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는 데, 그 강 이쪽에는 국무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고, 강 건너편에는 국방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무부와 국방부는 포토맥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는 형국입니다만, 실제로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련하여 두 부서 사이의 갈등은 심각합니다.

우선 청사의 크기를 비교해보더라도, 거대한 오각형(펜타곤)으로 지어진 국방부 청사가 국무부 청사보다 훨씬 큽니다. 국방부 청사는 너무 커서 건물 안에서 이동하기 위해서 특수하게 제작된 옥내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2004 회계연도로 제출된 미국의 정부예산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군사비입니다. 연간 군사비는 3천9백90억달러나 됩니다. 군사비를 제외한 나머지 정부예산을 모두 합친다고 해도 3천8백40억달러에 불과합니다. 군사비 다음으로 지출이 많은 교육비는 5백50억달러, 보건비는 4백90억달러, 법무비는 3백40억달러입니다. 국무부가 사용하는 국제사업비는 2백90억달러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군사비가 3천9백90억달러인데 비하여, 미국의 동맹국들로 알려져 있는 나토 가맹국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남(한국)이 지출하는 군사비 총액은 2천2백50억달러, 러시아의 군사비는 6백50억달러, 중국의 군사비는 4백70억달러입니다. 미국이 이른바 '깡패국가'라고 모욕하고 있는 7개 반미국가들의 군사비 총액은 1백20억달러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은 7개 반미국가들의 군사비 총액보다 무려 33배나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산업체계가 군사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이번 여름에 워싱턴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에 가본 일이 있습니다. 일반인들과 여행객들, 어린 학생들이 참관하고 있는 그 거대한 박물관에는 미국의 우주공학기술과 항공공학기술의 발달사를 말해주는 수많은 전시물들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거의 모든 전시물들이 미국이 개발한 미사일과 전투기들이었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소련과 중국이 개발한 미사일의 모형들을 갖다놓고 미국의 미사일들과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군수산업과 그 연관산업을 제외하고 미국의 국가산업을 말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국가산업 전반이 고도로 군사화되었으므로 이른바 '군산복합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미국은 국가적으로 전쟁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사회적으로 전쟁영웅을 추앙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의 대도시들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들 가운데 전쟁과 관련된 이름이 붙어있는 도로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조선)전쟁 참전군인 추모도로', '진주만 추모도로', '전쟁포로와 전투임무 수행중 실종자 추모도로' 같은 도로이름들입니다.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 있는 큰 도로들에 전쟁과 관련된 이름이 붙어있는 사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미국 전역에는 전적지와 전쟁기념비가 수없이 많습니다. 세계 최대의 도시라고 하는 뉴욕의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부두에 영구히 정박되어 있는 퇴역한 항공모함은 이름난 견학대상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전쟁과 군사를 전문으로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전쟁영웅을 추앙하는 분위기도 상당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제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자신이 군사지휘관이었고 전쟁영웅이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미국을 군사화된 국가, 전쟁국가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군사화된 국가, 전쟁국가로 등장한 미국이 군사중시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자기의 군대를 앞세우지 못합니다. 미국은 군사중시정책을 실시하면서도 선군정치를 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북(조선)과 미국은 똑같이 군사중시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선군정치는 오직 북(조선)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군사중시정책과 선군정치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사중시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선군정치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군대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북(조선)과 미국이 똑같이 군사중시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전자의 군대는 사회주의 정치의 주체인 혁명군대인 반면에, 후자의 군대는 침략전쟁의 도구입니다.

군사중시정책을 취한다고 해서 어느 나라나 선군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선군정치와 선군혁명은 혁명군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혁명군대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선군혁명이 불가능한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혁명군대를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서 어느 나라나 선군정치와 선군혁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도 혁명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 나라들은 선군정치와 선군혁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중국이나 쿠바 같은 나라들도 혁명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선군정치와 선군혁명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나라들의 지도자들이 선군사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나라들의 집권당들이 선군정치와 선군혁명을 영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혁명군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혁명적 당이 노동계급의 당인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군대도 역시 노동계급의 군대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혁명군대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의 군대입니다. 혁명군대는 혁명적 국가를 수호하는 국방의 주체이며 동시에 혁명적 인민을 혁명화하는 사회주의 정치의 선도적 주체입니다.

선군정치는 강병육성책이나 군사중시정책을 배제하지 않고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군정치는 강병육성책이나 군사중시정책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선군정치는 혁명적 지도자와 혁명적 당이 혁명군대를 앞세워 전체 인민을 혁명화하는 새로운 형의 사회주의 정치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8. 선군정치는 민족의 자주문제, 통일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가

강: 조국통일의 견지에서 보면, 6.15 공동선언의 탄생과 클린턴 정권 말기의 조·미 관계의 진전도 선군정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볼 수 없겠습니까? 또한 6.15 공동선언에 의해서 마련된 민족자주, 화해, 교류·협력기운의 전례 없는 앙양 등과 같은 엄청난 변화들 역시 그렇다고 느껴지는 데 소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대로,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것은 조국통일운동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변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실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던 시점은 2000년 6월입니다. 클린턴 정권 말기에 조·미 관계가 진전되었던 시점은 2000년 10월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를 시작한 시점을 1995년으로 잡는다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뒤에 조국통일운동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조·미 관계가 진전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하는 것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 동안의 기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북(조선)에서는 그 기간에 '고난의 행군'을 하였고, 선군정치를 하였습니다. 북(조선)에서는 만일 선군정치가 아니었다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사를 홀시하고 군대를 강화하지 않았더라면 혁명과 건설은 고사하고 우리는 벌써 망한지도 오랬을 것입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혁명군대를 앞세워서 진행하였던, 매우 힘들고 어려운 행군이었습니다. 행군이라는 말 자체가 군대의 전진을 뜻합니다. 혁명군대를 앞세운 행군은 고난의 비바람 속을 방황하는 행군이 아니라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고난을 이겨내며 전진하는 행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였을까요?

거의 모든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고난의 행군'의 목적을 북(조선)이 붕괴위기를 극복하여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만일 '고난의 행군'의 목적이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것에 있었다고 한다면, 선군정치의 목적도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것에 있다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의 목적은 체제안전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김일성 주석이 지휘하였던 혁명군대가 살인적인 강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일제침략군대와 계속 전투를 벌이면서 고난의 행군을 하였던 목적이 혁명군대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30년대에 고난의 행군을 하였던 목적은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조국광복이었으며, 1990년대에 북(조선)이 '고난의 행군'을 하였던 선군정치의 목적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곧 자주성의 완성이었습니다.

자주성의 완성이라는 보편적 개념을 한(조선)반도의 특수한 상황에서 해석한 개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천명하였던 강성대국 건설입니다.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민족국가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한(조선)민족에게 있어서 민족국가의 자주성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조국통일을 실현해야 합니다. 분단된 국가를 두고 자주성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분단은 외세가 강요한 것으로서 그 자체가 자주성이 심각하게 훼손 당한 것입니다.

우리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분단체제는 외세인 미국에 의해서 수립된 것이며 미국의 정책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조선)민족이 미국과의 관계를 자주성의 원칙에 의거하여 풀지 못하면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없으며, 조국통일을 실현하지 못하면 자주성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국통일문제를 논하면서 왜 자꾸 조·미 관계를 중시하느냐고 나에게 묻곤 하는데, 거기에는 논리적 근거가 있습니다. 조국통일문제의 본질이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데 있고, 자주성을 훼손하는 외세가 미국이기 때문에 조·미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조국통일문제를 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난의 행군'은 식량난과 에너지난으로 허덕이며 방황하였던 퇴각행군이 아니라 혁명군대를 앞세워 조·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승리의 진군이었습니다. 조·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면, 한(조선)민족과 미국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이며, 결국 한(조선)민족이 조국통일을 실현하여 자주성을 완성하게 됩니다. '고난의 행군'은 민족국가의 자주성을 완성하고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려는 민족사 최고의 목적을 추구하였던 선군정치의 행군이었습니다.

나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 동안에 갖은 고생을 무릅쓰고 선군정치의 행군을 하였기에 그 결과로 조·미 관계의 변화가 일어났고, 조국통일운동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는 총대중시사상을 틀어쥐고 선군정치를 하여 이 땅 우에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할 것입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9.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투쟁과 선군정치

강: 3월 21일부 『로동신문』에 「선군사상은 우리 시대 자주위업의 필승불패의 기치이다」라는 편집국 논설이 실렸습니다. 이 글을 보면 "선군사상은 오늘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21세기 혁명의 위대한 지도적 지침"이라고 하면서 오늘의 시대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자주력량과 지배세력 사이에 사생결단의 투쟁이 벌어지는 시대"라고 썼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지금의 정세를 새삼스럽게 주시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선 미국의 부시 정권이 제국주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세계를 긴장과 불안 속에 몰아넣고 조선(한)반도와 그 주변에서도 오늘과 같이 최악의 상황을 조성시켰는데, 그들과의 '사생결단의 투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한: 조·미 관계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형성되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관계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입니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는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치열한 투쟁을 벌여 결국 어느 한 쪽이 죽고 어느 한 쪽이 사는 것으로 그 관계가 정리될 것입니다. 그래서 북(조선)에서는 사생결단의 투쟁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입니다.

사회주의가 죽느냐 제국주의가 죽느냐 하는 문제는 조·미 관계의 운명문제이며 동시에 인류의 운명문제입니다. 만일 조·미 대결에서 북(조선)이 패하고 미국이 승리한다면, 사회주의는 죽는 것이고 제국주의가 지구를 완전히 뒤덮게 될 것입니다. 북(조선)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혁명사상이며, 현실의 과학입니다. 또한 사회주의는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이며 가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북(조선)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의 종말은 인류의 종말을 뜻합니다.

북(조선)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투쟁에서 사회주의의 종국적 승리와 제국주의의 종국적 멸망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를 사회주의의 종말이라고 하면서 마지막 남아있는 사회주의도 종말을 고하게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은 그러한 예견이 사회·역사적 안목을 상실하였다고 봅니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주의 진영은 붕괴하였으나 사회주의는 인류의 사상과 양심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고, 인류가 살아있는 한, 사회주의도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진&#